** 잡마켓 이야기를 언젠가 해야지 해야지 했는데 이렇게 늦어져 버렸다. 사실 박사의 구직 과정이라는 것은 꽤나 복잡하고 실제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디테일도 많다. 여기서는 경제학 박사 이후의 진로에 대해 종류별로 큰 그림만 그려서 설명하려고 한다.
일단 박사 과정 마지막 연차에 들어서면 잡마켓 페이퍼, 박사논문을 최종적으로 다듬어서 본인이 지원하는 학교들에 뿌릴 준비를 하고, 10~11월부터 지원 과정이 시작된다. 미국 및 전세계의 잡 오프닝은 웹사이트 https://www.aeaweb.org/joe/listings 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리고 이 오프닝 중 상당수는 1월 초 전미경제학회에서 면접을 갖는다. 호텔 방을 빌려서 30분 정도 면접이 이루어진다. 이 면접을 통과하면 학교나 연구원에 직접 방문하여 발표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즉 서류심사 > 30분 면접 > 방문 발표 심사 (잡톡) 순서.
단 국내의 직장들은 다른 단계를 거친다. 여기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아래의 종류별 분류는 좋고 나쁜 순서가 아니라 잡마켓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따라 분류했다. 1-2번이 제일 좋기는 하지만 3번부터 8번까지는 본인의 선호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것이다.
1. 미국 리서치 스쿨
박사과정이 존재하는 미국의 대학교. 연봉과 연구 환경 모두에 있어서 제일 좋다. TOP 50을 넘어가면 기대보다 못한 곳들, 학과 내 '정치'에 휩쓸리는 곳들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보통 미국 학교들은 잡마켓 시즌이 되면 올해 우리 학교에서 졸업하는 박사들의 명단을 갖고 누가 제일 좋은지 누가 그 다음인지 대략 순서를 매겨서 결정한다. 박사논문을 잘 쓰고 지도교수님께 인정받아서 이른바 '학교 대표'가 되면 상위 리서치 스쿨에서 면접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지도교수에 따라서는 지도교수 개인 역량으로 면접을 뚫어주는 분들도 꽤 있다.
경제학과 외에 경영대학 소속의 일부 학과도 지원이 가능하며, (경영대 안에 경제학과가 있는 경우도 있고 경영대 내에서 거시, 금융 교수를 필요로 하거나 마케팅 학과에서 산업조직론 교수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응용미시의 경우 정책대학원, 국제경제의 경우 국제대학원에서도 수요가 있으니 다양하게 알아보는 것이 좋다. 한국 사람이 TOP30 안에 진입하는 것은 매년 2명에서 4명 정도...? 최근 분위기는 확인하지 못했다.
2. 미국 페드, IMF 등 국제 기구
국제 기구 리서치 부서의 경우 제일 좋은 곳은 미국 연방중앙은행인 Federal Reserve Bank. 그 중 워싱턴 본부인 Fed Board와 뉴욕의 Fed 뉴욕이 제일 좋다. Fed 각 브랜치들도 좋은 직장이지만 갓 학위를 받은 박사들 (fresh phd)을 많이 뽑지는 않는다. 페드에서는 아무래도 거시 및 금융 분야가 제일 수요가 많지만, 응용미시, 보건, 국제경제 등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수요가 있다. 페드 다음은 IMF. 다른 국제기구의 경우 연구부서들이 있기는 하지만 신입 박사들을 많이 뽑는 편은 아니다. 매번 잡 오프닝이 열리는지를 확인해 봐야 한다.
페드나 IMF의 업무 환경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다. 일이 너무 많아서 리서치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고, IMF에 있으면서 수시로 해외 출장 다니고 하면서도 본인 연구 착실하게 해서 다른 리서치 스쿨로 옮기는 사람들도 있다. 일반 학교보다는 당연히 일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리서치 스쿨은 테뉴어 심사가 엄격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제 기구는 상당히 직장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3. 캐나다, 유럽, 호주 등
위에 링크한 AEA 웹사이트는 미국 외 지역의 잡 오프닝도 검색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캐나다와 호주는 영어권 국가이고 캐나다는 특히 미국과 교류가 쉽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편. 캐나다, 호주, 유럽 모두 자국 국적이 있는 학생들을 어느 정도 선호하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도 가는 사람이 꾸준히 나온다. 이들 지역의 경우 미국에 비해 테뉴어 심사의 부담은 약간 낮은 편이고, 대신 전반적으로 연봉이 좀 적고 세금도 높은 것은 단점. 학교별로 국가별로 차이가 있으니 잡톡 단계에 들어서면 상세하게 알아보는 것이 좋다.
4. 중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홍콩과 싱가포르의 경우 여러 학교들이 웬만한 미국 TOP50 내외 수준의 교수진을 갖고 있다. 연봉과 리서치 환경도 좋은 편. 다만 호주와 홍콩 싱가포르 모두 미국과 거리가 멀다 보니 생기는 어려움이 꽤 있다. 중국의 경우는 최근 국가적으로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새로 생기는 많은 학교들이 공격적으로 신입 박사들을 유치하면서 연봉과 리서치 환경에 있어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잡톡을 생략하고 교수 오퍼를 주기도 한다. 비록 동료 교수들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기에 네트워크 면에서 한계는 있지만 연구 분위기 자체는 계속 좋아지는 편.
보통 중국-홍콩-싱가포르 모두 위에 링크한 AEA 웹사이트에 잡 포스팅이 올라온다면 영어만 써도 되기 때문에 연구와 강의에서 언어로 인한 문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단 현지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는 본인이 따로 익혀야 한다. 대만 학교들도 이보다는 약간 환경이 낮아도 꽤 좋은 곳들이 많다고. 다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불안한 곳들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나는 중국이라는 국가의 비민주성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 중국 학교를 거의 지원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살짝 아쉽기도 하다.
5. 미국 티칭 스쿨
미국에서 박사과정이 없는 곳은 티칭 스쿨로 분류된다. 티칭 스쿨이라고 해도 앰허스트나 윌리암스 등등 리버럴 아트 스쿨은 미국 학부 순위 전체 TOP 10에서 왔다갔다 할 정도로 명문학교이고 이런 곳들은 하위 리서치 스쿨과 경쟁력에서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좋다. 미국 티칭 스쿨들도 거의 AEA에 잡 포스팅이 올라오긴 하는데, 수시로 뽑는 경우가 많아서 ASSA 면접을 하지 않거나, 혹은 잡톡을 온라인 면접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티칭 스쿨 역시 연봉 환경 테뉴어 등등 천차만별이다. 맨해튼 한가운데 있는 곳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알 수 없는 곳도 있고. 잡톡이 가까워졌다면 학교 잡 포스팅을 보고 정보를 꼼꼼히 읽어보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그 학교 교수들이 어느 학교 출신이고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다.
6. 포닥 및 계약직 교수
10년 전 기준으로는 경제학에서 포닥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아주 잘하는 학생을 우리 학교로 유치하기 위해 교수 자리를 보장해 주면서 포닥으로 1-2년 더 연구할 시간을 주는 보너스 형식의 포닥만 있었다. 요즘은 갈수록 포닥이 많아지는 것 같다. 경제학 박사를 받고 만족할 만한 자리를 받기 힘들어서 잡마켓에 2-3년 뒤 다시 나가려고 하는 경우다. 경제학은 몇몇 케이스를 빼고는 랩 생활이 없는 편이라서, 경제학에서 포닥이라고 하면 연구교수 개념에 가깝다. 연봉은 낮지만 강의 부담이 없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기에,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계약직 교수나 강사, visiting professor나 lecturer의 경우도 엇비슷하다. 1-2년 정도 계약직으로 시작하여, 그 동안 잘 하면 정규직 조교수 오퍼를 받을 수 있다. 정규직 조교수 오퍼는 연구 실적과 강의 능력 모두를 고려하며 리서치 스쿨로 갈수록 연구실적을 중요시하고 티칭 스쿨로 갈수록 강의능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포닥이나 계약직 교수의 경우 수시로 채용 공고가 AEA 홈페이지에 올라오므로 자주 확인해야 한다. 1-2년 계약직이므로 그곳에 있으면서, 확실하게 연구를 해서 미국 리서치 스쿨 급을 목표로 할지, 아니면 국내 학교를 목표로 할지 정하고 그것에 맞춰서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7. 국내 연구원
국내 국책연구원은 KDI, 조세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산업연구원, 노동연구원. 그리고 금융연구원, 자본연구원, 한국은행 산하 경제연구원 전경련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 여러 기업 산하 민간연구원들 등이 있다. 이곳들은 수시채용도 하지만 대부분 AEA 미팅에 잡 오프닝을 내고 면접도 본다. 미국 리서치 스쿨과 비슷하게, 서류심사 > AEA 미팅 30분 면접 > 연구원에서 잡톡 과정을 거친다. 수시채용도 하는 편이고 연구원들 사이에서 다른 연구원으로 옮기는 경우도 은근히 꽤 있는 편.
국책연구원도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은근히 연구원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일단 주요 민간연구원들은 서울에 있지만 국책연구원은 위에서 말한 다섯 곳은 세종. 정보통신연구원은 진천.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울산, 농촌경제연구원은 나주에 있다. 이 때문에 국책연구원에서 민간연구원 또는 국회 입법조사처 쪽으로 옮기는 분들도 많다. 또한 연구원마다 분위기도 다르다. 어디는 인사적체가 심하고 어디는 허리 역할을 해 줄 연구위원이 너무 없고. 어디는 혼자 일하고 어디는 박사 여러 명이 팀으로 일하고. 어디는 석사연구원이 많아서 박사가 리더 역할을 한다면 어디는 석사연구원이 거의 없고 등등.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으므로 오퍼를 여러 개 받는다면 심층적으로 알아보고 고민하는 것이 좋다.
개인 연구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케바케. 일단 연구원에 있으면 회사의 일이 우선이 되기에, 개인 시간을 내서 연구를 수행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에서 만들어 내는 연구 보고서의 경우 연구 보고서 성격에 따라서 어떤 경우는 일부만 수정하여 국내 저널에 낼 수는 있기는 하지만, 연구 보고서 목적의 연구와 논문을 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연구는 성격이 다르게 마련이다. 결국은 회사 분위기에 따라 다르고, 개인이 얼마나 적응을 잘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어떤 분들은 회사에서 열심히 하면서도 개인 연구 결과물 엄청나게 쏟아내기도 하는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은 회사 일만 갖고도 일이 많아서 허덕이게 된다.
8. 국내 학교
국내 학교 중 일부는 AEA 미팅에 공고를 하고 신입 박사를 뽑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학교는 별도의 채용 시스템을 거친다. hibrain.net이라는 곳이 여기에서 제일 유명하다. 대부분의 채용 공고는 여기에 다 올라온다. 국내 학교로 가고 싶다면 일단 여기부터 자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국내 학교는 보통 '최소한의 연구 결과물'을 요구할 때가 많다. 미국 리서치 스쿨이 출판된 논문이 하나도 없어도 박사논문만 좋다면 상관하지 않는 반면, (사실 미국 경제학 박사의 경우 졸업 단계에서 출판된 논문이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국내 학교는 이미 발간된 연구 결과물이 채용에 있어서 의무조건일 때가 꽤 많다. 좋은 논문일 필요는 없다. SSCI 등급이면 좋지만,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레벨이라도 상관없다. 그런데 출판된 논문이 없으면 안 되는 경우가 꽤 많다. 또한 논문의 질도 중요하지만 논문의 갯수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만약에 국내 학교에 들어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논문 하나는 빨리 출판해 놓고, 나머지 논문도 갯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맞춰 나가야 한다. 미국 높은 리서치 스쿨에서, '낮은 저널에 출판하는 것'을 오히려 안 좋게 보는 것과는 딴판이다.
국내 학교 채용 과정은 서류 > 학과 면접 > 총장 면접 단계로 이루어지며, 학과 면접은 잡톡 수준으로 1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곳도 있지만 20-30분 정도로 짧게 진행되는 곳이 더 많다. 그리고 학과 면접에서 지원자를 평가하고 그것을 총장 면접에 올리는데, 어떤 곳은 학과 면접에서 거의 채용 여부가 결정되는 반면 또 어떤 곳은 총장 면접에서 순서가 뒤집어질 때도 많다고 한다.
아무튼 국내 학교 상당수는 미국에서 박사를 갓 마친 사람을 따로 배려해 주지 않는다. 경영학의 경우 한국 박사를 뽑는 비율도 꽤 높지만 경제학의 경우 미국에서 박사를 받고 바로 국내로 돌아온다면 국내 연구원을 거쳐서 들어오는 경우가 여전히 대부분이다. (예외도 종종 있기는 하다) 국내 연구원 먼저. 그리고 본인 논문을 써 내면서 몇 년 있다가 국내 학교로 가는 경우가 제일 많은 편이다.
글이 꽤 길어졌는데, 원래는 글 여러 개를 써야 할 내용을 글 한 개에 몰아서 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이 블로그는 이제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 잡마켓 이야기까지 여기에 써 넣어야 이 블로그가 완결되는 것 같아서 이 내용은 여기에 써 둔다.
'유학준비 Essenti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맘대로 Econ Ph.D. 과정 랭킹 30+@ (2015년 7월 25일 update) (273) | 2015.03.31 |
---|---|
경제학과에서 바라본 경영대 박사과정 (50) | 2015.03.29 |
경제학 박사 과정 들어가기 - 최근 경향 (62) | 2015.03.25 |
thick-skinned (8) | 2014.12.03 |
경제 전문가, 그리고 경제학자 (24) | 201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