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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준비 Essential

thick-skinned

thick-skinned.

직역하면 껍질이 두꺼운. 혹은 한국식으로 번역하면 낯두꺼운. 철면피. 그냥 보면 안 좋은 뜻 같다.

그런데 영어 사전을 보면,


- "If you say that someone is thick-skinned, you mean that they are not easily upset by criticism or unpleasantness."

ex) He was thick-skinned enough to cope with her taunts.

- callous, insensitive


다시 한영 사전으로 돌아와 서술된 여러 의미를 보면,

- 비판, 모욕 등에 쉽게 동요하지 않다, 낯두껍다, 둔감하다, 무덤덤하다, 얼굴이 두껍다, 유들유들하다.


# 어딜 가나 중용이 중요한 법. 모든 단어는 부정적인 성향과 긍정적인 성향이 공존한다. 한글 직역인 낯두껍다, 철면피 같은 단어는 뻔뻔하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영어 사전을 보면 이 단어는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멸시적인 단어는 아니다. 그냥 비판이나 모욕 등에 동요하지 않고 당당하다. 둔감하다. 잘못한 게 있어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더 나아가면 넉살좋다 같은 긍정적인 의미까지 얻을 수 있다.



# 그리고 이 성향은 학자로써 성공하기 위해서 상당히 중요한 성향이다.


# 얼마 전에 올린 글 http://econphd.tistory.com/553 에서 이야기했듯이, 그 논문은 박사로서 필요한 무형적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모티베이션이야 어디에도 다 들어가는 거고, 창조성은 박사과정이 뭔지 조금만 생각하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이 블로그를 자주 들어온 사람이면, 외향적인 성향과 네트워킹이 박사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해할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과정이 커뮤니케이션과 모조리 얽혀 있기 때문이다. 지도교수 만나고 잡을 따내고 논문심사 등등등. 그런 내용은 이 글에 잘 정리해 두었다. http://econphd.tistory.com/285


# 그런데 이 둔감함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뻔뻔함, 상처받지 않기, 감정적으로 안정되어 있기, 당당함 등등의 단어로 내 머릿속에 따로 놀면서 떠오르고, 이 블로그에 일기를 쓰면서도 파편적으로만 언급되었던 것들이, 저 논문에 학자로서 성공에 필요하다고 직접적으로 언급된, thick-skinned 라는 단어로 한방에 정리되었다. 이 단어의 내용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함의가 있고 또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예민하면 안 되고, 사람들이 뭐라 그러던 너무 신경쓰면 안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강해야 한다. 단순히 승승장구했고 자존심에 제대로 기스난 적이 없어서 자아가 강한게 아니라, 어떤 시련도 겪어낼 수 있거나 혹은 애초에 누가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않는 자아를 가져야 한다. 특히 프리젠테이션. 인생은 설득인데, 설득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본인이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거다. 남들이 옆에서 흔들든 간에 본인이 자기 논문에 대한 지지가 확고해야 한다. 


# 한국 사람들에게 좀 어려운 성향이긴 하다. 일단 한국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 눈치 엄청 보고 나 자신과 상대방을 흔히 비교한다. 그리고 교육도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주입식인 편이고, 따라서 교과서나 논문에서 본 내용을 발표하는 것은 믿고 말할 수 있지만, 자기가 만든 내용을 발표할 때 그 내용을 굳게 신뢰하기는 쉽지 않다. 뻔뻔하다는 단어는 확실히 부정적이고, 유들유들하다는 단어도 원래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미국에서도 좀 더 경멸적인 표현으로 brazen-faced라는 단어도 쓰기는 쓰지만. 진짜 철면피.


# 한국에서는 뻔뻔하다는 단어는 때로는 양심적이지 않다라는 의미로까지 쓰이기도 한다. 물론 thick-skinned 와 양심과는 큰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적어도 솔직하다는 것과는 반대되는 의미다.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으면 그걸 초월하는 본인에 대한 신뢰를 갖거나, 혹은 거기에 내적으로 흔들려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실제로 미국 모 교수는 자기 학생들에게 Acting=연기 수업 들으라고 한 적도 있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인데, 그게 간단하지는 않을 테니까.



# 나는 이렇지 못하다. 자기 자신을 절대로 속이지 못한다. 솔직히 거짓말은 해도 감정은 못 숨긴다. 또한 교수님이나 사람들 앞에서 내 연구 결과를 말하는 것에 대해 양심에 찔리는 것, 그것을 넘어 내가 부도덕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거부감이 들 때가 너무 많다.


# 하지만 이 성격에 대해서 불만이 없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에게 몇 번 데인 이후로는 대화하면서 자기 자신을 여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래서 이런 thick-skinned 성향을 좋아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후자.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 사람이 그렇다. 뻔뻔해 보이고, 믿기가 어렵다. 그리고 상대방의 특히 기분 좋을 때 즐겁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매력을 갖는데 다정다감하면서 예민하지 않기도 어려우니까. 자신에 대한 신뢰가 대단히 깊다면 솔직하면서도 thick-skinned 일 수도 있겠지만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내 체질이 맞다고, 옳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잘못된건가 막 이러고 있었다.


# 그런데 이 단어 하나로 정리가 되었다. 

# 보다시피 이 글은 단상이나 일기가 아니라 유학준비 Essential 에 두었다.

# 박사과정은 원래 thick-skinned 해야 하는 거고, 내가 틀렸던 거였다. 나는 내가 가진 박사과정에 부족한 자질이 하나 더 늘었다.


# 여담이지만 내 주변에는 A형 중에 눈에 띄게 좋은 방향으로 insensitive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 AB형은 겉으로는 그래 보여도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 사람들이 많고, B형이야 이쪽과는 거리가 멀다.

# 본인이 이 체질일수록 탑스쿨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많고 그렇지 않을수록 적절히 학교 네임밸류를 낮춰 가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