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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영화 후기 및 MLB 이야기




# 어떤 특정 직업이나 전문가의 세계를 다룬 영화 혹은 드라마는 전문성과 보편성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한다. 너무 전문적이면 일반 대중의 흥미를 잃어버리고 너무 대중적이면 그 분야를 잘 아는 전문가들의 공격을 받는다. 그래서 양쪽 모두의 찬사를 받기는 쉽지 않다. 내가 MLB를 아주 좋아하면서도 영화 머니볼을 이제야 본 것도 그 때문이다. 긍정적인 영화 리뷰는 많이 보이는데 그 당시 야구 판을 거의 다 알고 있던 나에게 영화가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내 평가를 요약하면 이렇다. "야구를 잘 몰라도 재미있을 수 있고, 야구를 국내야구 정도 적당히 안다면 최고의 영화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MLB를 꿰고 있다면 10년전 추억을 되살리는 것 외에 별 흥미가 없을 수도 있다."


# 왜냐 하면, 실제와 다른 영화의 몇몇 모습이 계속 눈에 걸리기 때문이다. 당시 오클랜드 20연승의 주역이었던 MVP 테하다, 그리고 중심타선의 저메인 다이, 에릭 차베즈, 그리고 영건 3인방 허드슨-멀더-지토. 이들을 굳이 영화에서 강조하지 않은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영화의 메인을 차지하는 부분도 실제와 다른 부분이 좀 있다. 예를 들면 카를로스 페냐는 빌리 빈이 끝까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2002년 초에 빌리 빈이 나름 큰 대가를 치르고 트레이드로 영입했으며, 4월에 신인왕급 포스였지만 5월에 극도의 부진, 그래서 6-7월에는 마이너리그에 있었다. 즉 페냐와 하테버그의 기용 문제를 놓고 빌리 빈과 감독 아트 하우 사이에 일어나는 다툼은 실제로는 '없었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빌리 빈의 천재성이 너무 돋보이지 않았다는 것. MLB 팬들 사이에 빌리 빈의 이미지는 '머니볼 이론의 대가'도 있지만, '트레이드의 천재'(혹은 사기꾼;;;)이다. 빌리 빈은 단장 취임 초기부터 다양한 트레이드를 시도하고 가끔 실패도 했지만 놀라울 정도의 성공률을 보이면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아래에 관련기사 '빌리 빈의 트레이드 전적'을 링크한다. 이것이 2008년 기사인데, 최근 2012년 초에 빌리 빈이 대규모 선수 세일을 하면서 다시 한번 대부분 성공, 성공 전적은 그 이후에도 계속 늘어났다. 다른 저비용 고효율 팀인 Tampa Bay Rays가 트레이드를 자주 하지 않고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이라면, 빌리 빈은 리스크를 건 도박, 트레이드를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24&aid=0000000732


# 그 결과 빌리빈은 떡실신도 가끔 당했지만 남들 모두 미쳤다, 혹은 돈 없어서 구단주에게 시위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 트레이드에서도, 최상의 결과를 꽤 자주 이끌어냈다. (최근에 앤드루 베일리 - 조쉬 레딕 트레이드가 대표적. 주전 마무리와 백업 우익수의 트레이드. 베일리는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날렸고 조쉬 레딕은 중심타자가 되었다.) 영화에서 예를 들면 영화 앞부분에서 스카우터들과 회의할 때, 스카우터들이 빌리 빈에게, '당신 작년에도 데이먼이랑 이스링하우젠 헐값에 트레이드로 잘 데려왔잖아. 올해도 다른 팀 상대로 사기 한번 잘 쳐봐.' 했다면, 그리고 빌리 빈이 돈 펑펑 쓰는 다른 팀을 보면서 맨날 몸값 올라가는 선수들 팔아야 하는 자기 신세 한탄 한번쯤 했다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 


# 그리고 영화에서 출루율을 강조한 부분도 조금 걸린다. 출루율을 강조한 것은 좋지만 '우리 팀은 돈이 없다. 그런데 출루율이 좋은 선수는 값이 싸다.'는 것이 조금만 더 강조되었으면, 그리고 출루율 자체보다는 야구에 대한 수학적 분석이 더 중요하다는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왜냐 하면 현재 빌리 빈의 오클랜드는 출루율을 그렇게 많이 강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why? 출루율이 좋은 선수의 몸값이 올라가서 돈 없는 오클랜드는 그걸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머니볼'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바라보는 오클랜드의 철학의 하나는 '선수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통해, 저평가된 선수를 영입한다.'이다. 실제 지금 오클랜드는 5-tool을 갖춘 선수도 많고 도루하는 선수도 좀 있다. 

(철학의 나머지 하나는 '적극적인 트레이드로 다른 단장들을 등쳐먹는다.')


# 하지만, 이 정도의 아쉬움 외에 영화는 아주 좋다. 10년 전 예전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으면서, 선수들의 클럽하우스, 감독과 단장, 스카우터, 선수들이 다양하게 교류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특히 영화의 포인트로 스캇 하테버그, Scott Hatteberg를 잡은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다. 출루율만 확실한 머니볼의 대표적 인물이면서, 마지막 20연승 때 끝내기 홈런을 실제로 친 인물이다. 사실 백업 포수였던 그가 오클랜드 1루수로 간다는 소식 역시,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빌리 빈이 드디어 정신줄을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비웃고 스캇은 견실한 활약을 했다.


# 또한 위에서 말한 아쉬움도 말 그대로 '아쉬움' 정도이지 '불만'은 아니다. 영화는 빌리 빈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또 실제로 촉망받았지만 실패한 유망주였던 빌리 빈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면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아무튼 영화는 영화이고 실화가 아닌 만큼 큰 줄기 아래서 어느 정도 가상은 들어가야 하고 그것이 불쾌함만 주지 않으면 된다. (대표적으로 작년 국내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는 가상인물인 '박만수'에 대해 호불호가 엇갈렸는데, 바로 작년 9월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그와 거의 비슷한 실제 상황이 일어났었다. Dan Johnson이라는 퇴물 타자가 9회말 2아웃에 대타로 등장하여 동점 홈런을 쳐서 팀을 포스트시즌 탈락에서 구해냈다.)


# 다만 내가 야구에 대해 쓸데없이 많이 알고 있어서 디테일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그게 영화로부터 온전한 감동을 얻어내는 것을 방해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내용들이 영화에서 일일이 표현되었다면 빌리 빈은 감동을 주는 인물이 아닌 천재들의 유쾌한 이야기가 되었겠지. 오션스 일레빈의 브래드 피트 같은. 나는 거의 확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괜찮은 영화일 거라고 :) 마지막으로 엔딩 영상 첨부. 경쾌한 노래인 Lenka 의 'The show'는 어쿠스틱으로 부드럽게 편곡되면서 가사의 의미가 잘 전달되는, 영화와 잘 어울리는 곡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