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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이야기

김수행 교수님과 맑스 관련 잡상들

1. 나는 학부 다니면서 한번 수업 들어갔다가 바로 이건 나랑 안 맞는구나 하고 드랍한 수업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민법총칙. 하나는 마르크스경제학. 교수님에 대한 일화, 그리고 살아온 길에 대한 존경과 상관 없이 수업을 듣는건 내가 재미있다고 느껴야 가능한 거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전적으로 수학과목 듣고 거기서 흥미를 얻으면서 경제학 공부의 길로 접어들게 된 케이스) 대단한 분의 강의를 듣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나 설령 강의를 들었다고 해도 내가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곳 시카고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글은 그냥 부담없이 쓰는 잡상들일 뿐이다. 나는 교수님을 추모하거나 기릴 자격(?)은 없다.


2. 다들 아시겠지만 나는 마르크스 경제학에 적대적이다. 우선 세상의 진보는 무조건 천천히 이루어져야 한다, 혁명으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은 큰 대가를 치뤄야 하며 보통 그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본다는 확신이 있다. 


3. 그리고 또 한가지는 방법론이다. 주류경제학에서는 모델을 통한 연역적 논증과 실증분석을 통한 귀납적 논증이 이미 확립되었는데 (적어도 내가 아는 국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나는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NL과 PD라는 곳이 얼마나 반지성적이고 문제가 많은지는 많이 들었지만, 마침 이런 글이 두 개 있으니 링크해 둔다. 

http://hagi87.blogspot.kr/2012/05/80-nl-pd-1.html?m=1

http://hagi87.blogspot.kr/2012/05/80-nl-pd-2-pd.html?m=1

그 분들은 뜻은 있었으나 과학적이지 못했고 감정에 치우쳐서 제대로 된 판단도 내리지 못했기에, 그 뜻조차도 의심받았다. 실제로 불순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도 있기야 있고.


4. 김수행 교수님 이하 마르크스를 연구한 사람들은 저런 운동권의 삽질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결과물을 얻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해외 학계에서는 마르크스도 계량적인 방법, 이론적인 방법으로 연구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서 얼마나 잘 진행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마침 김수행 교수님의 부고가 나온 마당에도 좋지 않게 서로를 이야기하는 김수행 교수님의 제자 분들의 포스팅도 올라오고 있다.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안타깝다는 생각뿐.


5. 국내에 잘 알려진 피케티를 필두로 해서, 이제는 주류경제학 방법론으로 현실을 이해하고, 현실의 문제점, 불평등과 기아와 같은 여러 문제를 접근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아주, 매우 활발하다. 오바마가 최저 임금을 올리려고 했을 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지만, 최저임금 상승에 찬성하는 경제학자들의 그 위세가 더 높았다. 국내에 현실에 대해 문제 인식을 가진 분들이 상당수가 마르크스주의에 뭍혀 있다 보니 오히려 이런 문제들은 국내에 잘 전파되지 않는다.


6. 당시 김수행 교수님의 지도를 받았던 분들도, 지금은 주류경제학, 혹은 행동경제학 같은 거의 주류경제학에 합쳐진 비주류경제학, 아니면 여전히 비주류에 가까운 비주류경제학 등등에서 각자 지향하는 바에 접근해 나가고 있다고 들었다. 


7. 한국 경제학계의 큰 별이 너무 빨리 졌다. 하지만 그분의 삶과 그분의 뜻은 이어질 것이다. 그 길이 꼭 그 분의 방법론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무례하게도, 나는 밀튼 프리드먼의 이야기를 한번 더 강조하고 싶다. "“One of the great mistakes is to judge policies and programs by their intentions rather than their results.” 정책이나 프로그램은 그들이 선의를 갖고 했느나 악의를 갖고 했는가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