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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이야기

장하준 인터뷰, 비판과 비난의 미묘한 차이

# 장하준 교수님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최근 우연히 친구의 페이스북에서 이에 대한 한겨레 기사를 읽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13471.html


# 기사만 보고 이 분이 무슨 소리를 하시나 생각하다가 기사의 파이낸셜 타임즈 이야기를 듣고 바로 영국의 financial times의 원문을 찾아보았다. 나에게 '파이낸셜 타임즈'와 '한겨레'가 갖는 권위의 차이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이 기사는 이 분의 주장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설명이 좀 더 많고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http://www.ft.com/cms/s/2/27a2027e-5698-11e3-8cca-00144feabdc0.html#axzz2pXBi5Edb


# 내 생각을 요약하면, 그분의 주장은 주류경제학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개선되어야 할 방향으로 이해되어야지, 주류경제학에 대한 멸시, 혹은 주류경제학을 허물어야 한다는 것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경제학자 워너비니까 당연한 거기도 하지만...) 왜냐 하면 그분이 언급한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은 적어도 최근 들어서는, 주류 경제학이 다양하게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경제학 학위를 받은 20년 전쯤에는 어떠했는지는 내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 현대 경제학이 수학적인 모델에 의존하고 있고, 시장의 힘을 신봉하고 있으며,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그 앞에 '지나치게', 혹은 '여전히' 같은 단어를 넣으면 맞다. 하지만 현대 경제학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스티븐 레빗이 Freakonomics 라는 저작을 통해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경제학의 많은 실증분석이 합리적 선택에 대한 강한 가정에서 벗어나 regression을 통한 변수들간의 관계 파악에 기초하고 있고(reduced-form),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인간 행동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검증하고 있으며 특히 Finance에 있어서는 주식 가격의 비합리적 움직임에 대한 수많은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 그는 인터뷰에서 Freakonomics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그 역시 인간 합리성에 기본하고 있어서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인간의 비합리성은 outlier이거나, error를 주는 정도로는 분석에 큰 영향이 없다. 그것이 predictably irrational할 때만 전체적인 인간 분석에 영향을 주며, 그러한 인간 선택에 대해서도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시에 그는 인간이 합리적이라도 전체적으론 그렇지 않으며 버블은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주류 경제학에서도 엄청나게 많이 다뤄지고 있다.


#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I’m not saying I have some kind of monopoly over truth, but at least you need to hear a different side of the story." 라고 언급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그의 비판이 주류경제학을 공격한다기보다는, 주류경제학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저작들을 읽지 않았으니.) 그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일정 부분에서만 타당하다. 내가 박사과정에 뵙는 경제학자들, 교수님들은 대부분 현실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현실경제에 의미가 없는 수학적 모델은 의미가 전혀 없다고 본다. 글에서 수학적으로 복잡한 모델이 더 좋은 모델로 받아들여진다는 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수학적 모델이 경제학의 발전에 한편으로는 족쇄가 되고 있다...고 표현한다면 어느 정도 맞다.


# 수학이 아주 유용한 도구로서 경제학의 발전을 이끌어 왔지만 결국 이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아주 뛰어난 직관을 갖고 있고, 자기 분야의 모델에 빠삭하지만, 비록 '같은 분야'라고 해도 '다른 모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모델에 담겨 있는 직관에 대해서 이야기는 되지만, 한계가 있다. 또한 Theory와 Empirics의 충돌, 혹은 Structural과 Reduced-form의 충돌에서 보여지듯, 성공한 교수님들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연구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애초에 분석 방법, 기본 가정부터 달리한 분석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이걸 어느 정도는 수용해야 할텐데 비판이 지나쳐 내 방식이 아니면 거의 쓰레기 취급하는 사람들도 교수님들 중에서 생각보다 많다. 세미나에서 질문이 오가면서 모델에 대한 내용이 깊어지면 서로 이해를 못하는 건 기본. (근데 그분이 예로 든 생물학은 그렇게 서로서로 잘 이해하면서 결론을 도출하나? 거기도 학문이 오랜 기간 발전해 온 이상 그렇게 안될 것 같은데?)


# 또한 많은 사람들이 '토픽' 못지 않게 '툴-methodology'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거시경제학이 특히 그런 느낌을 많이 받고, 또 structural과 reduced-form을 비롯한 논쟁도 역시 그렇다. 주변에는 보다 micro-based 방법으로 거시경제 토픽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교수님들끼리 서로 존중은 하지만, 서로 이해하는 데는 가끔씩 한계가 있음을 본다. 심지어 그건 거시경제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주제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학문은 그 학문이 사용하는 방법론보다는 그 학문이 추구하는 토픽으로 우선 분류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Methodology로 보면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장하준 교수님은 경제학자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따라서, 나는 이 분의 저작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 분을 경제학자라고 생각한다. 토픽으로 보면 이 분은 거시경제학자에 가깝고 분명히 미시보다는 거시가 더 수학적이라서, 이 분이 이런 문제점을 더 느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마침 내가 듣는 수업 교수님이 주류경제학자 중에서 수학을 제일 못하시는 분 중의 한 분이다. 학부 때 수학 수업 거의 안 듣고 박사과정에 와서 '빨리 졸업해서 여기를 떠야겠다'는 마음으로 박사를 땄고 성공하기까지는 자기 스스로 운도 좋았다고 하신다. 수학 수업 안 듣고 어떻게 박사과정 합격했는지는 넘어가자. 그분의 말씀. 좋은 논문을 만드는 건 흥미로운 토픽, 사람들의 통념에 반대되는 결과, 그리고 새로운 데이터 혹은 새로운 관계를 보여주는 아이디어다. 수학적으로 복잡한 모델은 좋은 방법은 아니며,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좋은 사람은 적지만, 수학적으로만 뛰어난 사람은 박사과정 학생 중에서도 엄청나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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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악하면, 경제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그의 진단은 맞다. 하지만 현대 경제학은 다양한 방법론을 소화하고 있으며, 단순히 복잡한 수학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제목 "the time is right to embrace moral dilemmas as well as mathematical models" 은 경제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서 적당하지만. 한겨레 기사의 제목 '수학 사용않고 경제학자로 성공'은 글의 전반적인 주제로 볼 때, 완전히 잘못되었다. 어디까지나 이 글은 경제학이 한계가 있다는 뜻이지 경제학이 잘못되었다, 버려야 한다가 아니다. 글쎄, 단순히 한겨레 신문에 대한 내 색안경 때문인건가?


# 사람들에게 저작이 잘 팔린다고 해서 성공한 경제학자라고 이야기한 건 농담이지 절대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면, 그럴듯한 말로 책을 썼지만 그 논리는 다른 경제학자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논박당한 말만 많은 얼치기 경제학자들까지 성공한 경제학자가 된다. 일반 대중보다 '경제'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경제학자들과 토론이 가능하고 서로 존중받을 정도의 주장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장하준 교수님 정도면 충분히 그런 경제학자 수준에 올라온 듯하지만, 안 그런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 주류경제학은 무조건 강자들, 시장만능주의자들을 위한 학문이라고 봐서는 안된다. 그런 편견은 소통을 단절시킨다는 점에서, 정부개입 이야기만 나와도 좌파,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건 내 성향과 관계있을지 모른다. 사회의 변화 및 발전에 있어서, 나는 보수적이다. 체제 안에서의 발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체제를 완전히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은 그 비용이 상당하다고 본다. 혁명가들의 순수한 마음을 낮게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혁명가들은, 너무 본인의 상황이 어려워서 더 잃을 게 없거나, 본인의 상황이 아주 충분하고 어려움이 없어서 혁명이 일어날 때 일반 사람들이 어떤 고난을 겪는지 모르는 (강남좌파 유형) 사람들이거나, 신념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다. 내가 보기엔.


# 지금의 경제학 체계는 다양한 의견과 세상에 대한 시각을 수용할 수 있다. 물론 박사가 되려면 지도교수님의 영향을 받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지만;;;; 그 외에 이 글을 보면, 장하준 교수 본인도 상당히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다는 것, 그리고 글 전반에 걸쳐 박정희 정권의 정책이 올바른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눈에 띈다. 박정희에 대해서 거품 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떠받드는 장하준 교수의 이런 생각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덧붙여 'Lunch with FT' 라는 신문 코너도 신선하다. 한국에서는 거리 인터뷰는 꽤 있는데, 맛집 인터뷰를 하면서 '맛집'과 '인터뷰'에 균형을 잡아주는 코너는 못 본 것 같다. 인터뷰 도중 내내 맛집에 대한 인상과 평가가 나오고, 마지막에서는 식비를 계산해 준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용, 봉황, 여자친구과 함께 '맛있는 영국 요리'도 거론되는데, 마침 이곳도 영국 요리집이 아니라 카레다. 영국에는 맛있는 인도 요리집은 많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