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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각종 공연 후기+@

브로콜리 너마저 - 열대야 마침표 후기


#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이 콘서트는 순수하게 브로콜리 너마저를 아주 좋아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검정치마 EBS 스페이스 공감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나서, 이대로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콘서트 일람을 확인해 보다가 브로콜리 너마저의 콘서트가 다행히 아직 매진이 안 되었고 취소표가 있었는지 스탠딩 앞쪽 번호도 남아 있었다. 그들의 음악이 경쾌한 곡들도 있기는 하지만, '미칠 만한' 노래는 거의 없으니 여동생과 함께 가더라도 스탠딩에는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 멜론 악스홀에는 처음 가보았는데 근처가 아파트 뿐이어서 좀 썰렁한 느낌이었다. 바깥에 오프닝이나 버스킹을 위한 자리인지 조그마한 무대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홀 안쪽은 1층 스탠딩과 2층 좌석의 2층 구성인데 홍대 라이브홀들 보다는 크고 설비가 좋으면서 스탠딩 관객들도 배려할 수 있게 된 것이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울지마 - 유희열의 스케치북. 가사는 아래에)


# 막상 공연에 왔지만 걱정스러운 점이 몇가지 있었는데, 우선 내가 이들의 음악에 몰입한 상황이 아니었다. 브로콜리 너마저 2집에 깔린 정서는 '위로'인데 지금 퀄 시험 결과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위로하는 노래 따위는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뭔가 부정타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2집의 가사는 나 자신의 바깥을 향해서 좀 날이 서 있는데 노래 가사에서 느껴지는 그런 부분은 내 취향은 아니다. 또한 원래 계피와 보컬을 분담하던 덕원이 2집에서는 거의 메인 보컬로 활동했지만, 그의 보컬이 과연 긴 콘서트를 혼자 잘 리드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즉 음악과 실력 모두 조금은 의심스러웠던 상황. 위에 링크한 '울지마' 영상과 가사가 내가 이번 앨범에서 받은 그런 여러 가지 이미지를 대표한다.



# 7시 10분에 공연 시작. 그런데 덕원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은 위의 '울지마' 영상에 있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이번엔 눈화장도 좀 하고 안경 벗고 머리 스타일도 바꾸고. 나중에 찾아보니 6월의 이른 열대야 공연영상에서도 이번과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튼 신선한 모습을 처음 본 나에게는 시작부터 충격이었다. 첫 곡은 2집 졸업의 마지막 곡인 '다섯시 반'. 이 앨범을 듣노라면 이 곡은 한 앨범의 마지막임과 동시에 다시 한 앨범의 처음과도 같은 느낌 - 그래서 다시 CD를 앞으로 돌려 처음부터 다시 들어도 자연스러운 - 을 주는데, 콘서트에서도 그 느낌 그대로였다. 2집 수록곡들 중에서도 날이 서 있는 모습이 없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 중의 하나다.



# 이어지는 곡은 데모 CD에만 수록된 잔인한 사월. 그리고 공연 시작을 알리면서 멘트 후에, 2집에 수록된 변두리 소년,소녀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로 이어졌다. 중간에 '졸업' 영상 때 알게 되었지만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보컬 윤덕원의 전필과목 수업 교과서 이름이기도 하다. '욕심많은 그들은 모두 미쳐버린 것 같아' 이 곡도 가사가 좀 날이 선 편인데,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런 가사는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졸업할 즈음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세상에는 아직 세상을 너무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 최소한의 인식과 행동이 결여된 사람들도 많으니,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다음으로는 내가 모르는 곡 하나 / 이젠 안녕 / 다시 모르는 곡 하나 이렇게 이어졌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이라면 나는 항상 공연 전에 예습을 하는데 잔인한 사월, 청춘열차 등 이들의 몇몇 대표곡은 데모 싱글로만 공개되어 있어서 음원으로 청취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분명히 이 두 곡도 어느 데모 앨범에는 있는 곡일 듯한데, 굉장히 느낌이 좋았지만 확인할 수가 없어 아쉬웠다. 나중에 B-side 곡들을 모은 EP라도 정식으로 발매해 주기를.


# 잠시 멤버들이 퇴장하고 특별 영상이 나왔는데 잔디/류지/향기는 미미 시스터즈를 떠올리게 하는 가발과 선글라스였고 덕원은 사진에 있는 것처럼... 저런 꼴로 등장했다. 술탄오브더 디스코 활동 때부터 덕원의 똘기(?)는 충분히 잠재력을 보였지만 브로콜리 너마저 본 공연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 줄지는 몰랐다. 함께 선보인 노래는 브로콜리 너마저 밴드의 데뷔곡인 '꾸꾸꾸'. '밴드하면 남자친구 생긴다며!' 멤버 향기의 외침 이후 다음곡, '울지마'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그 다음은 1집 수록곡인 '춤',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의 차례였다. 이 노래 전에 덕원은 한번 즐겨보자, 미쳐보자는 이야기를 했지만 '춤'은 아무리 들어도 가만히 앉아서 가사 하나하나 씹어 보면서 감상하기에 좋은 노래다. 요즘 내 mp3에 들어 있는 노래여서인지 더욱 귀에 잘 들어왔다. 그 다음은 CF 삽입곡으로도 유명한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였는데 곡 중간에 멤버 향기가 제대로 막춤을 선보였다. 흔치 않은 모습에 놀랐는데 제대로 찍힌 사진이 없어서 아쉽. 궁금하신 분들은 동영상 찾아보시면 분명히 누군가 잘 촬영한 사람이 있을 듯...



# 경쾌하게 달아오른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멘트에서 덕원이 '차를 마실 시간'이라고 하자 사람들은 '유자차'를 연호했지만 덕원이 '쌍화차!'를 외쳤고, 사람들은 그제야 또다른 노래 '두근두근'을 떠올렸다. 그리고 '청춘열차'. '2009년의 우리들' 까지. 경쾌한 분위기로 주욱 달려 준 후에 다시 멤버들이 잠시 퇴장하고, 초중고 교과서, 대학교 교과서, 각종 철학 내지는 탐구에 관한 책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들까지(올해 초에 덕원은 결혼했다.) 주욱 영상에 이어지더니 '졸업'을 열창하기 시작했다. 꽃가루가 한번 터졌는데 그게 덕원의 정수리에 그대로 붙어서 약간은 엄숙한 분위기를 깨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윗 사진처럼.



# 다음은 '환절기'와 다시 한 번 모르는 곡이 나왔는데, 이 곡은 굉장히 긴 길이에 마찬가지로 약간 어두운 분위기인 '환절기' 이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마치 Nirvana나 Creed의 그런지 사운드를 떠올리게 하는, 인상깊은 곡이었다. 입장할 때 나눠준 CD에 이 곡이 들어 있었는제 런닝타임 15분이 넘었다. (그걸 full로 연주한 것 같지는 않다.) 덕원이 시작할 때부터, 평소 공연에는 처음에 조용하다가 뒤로 갈수록 경쾌한 분위기로 이끌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바꿔 보겠다고 했었는데, 그 말대로 처음과 중간에 경쾌한 곡이 많았고 오히려 뒷부분이 어둡게 느껴지는 곡들이었다. 아, 그리고 의도하지 않게 덕원의 모습만 많이 찍혔는데, 위의 사진들에서 보이듯이 내가 서 있던 위치에서 향기는 어느 키 큰 분의 머리에 가리고 류지는 드럼 한 쪽에 얼굴이 가리고, 잔디는 너무 멀었다.



# 2집 앨범 졸업의 첫 곡인 '열두시 반'이 이어지고 나는 당연히 이 곡과 연결되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멤버들이 다시 잠시 퇴장했다. 약간은 부자연스러운 interlude. 몇몇 사람들이 앵콜을 외쳤지만 이건 공연이 종료된 것이 아니어서 그냥 기다리면 되는 일. 후에 옷을 갈아 입고 나온 그들은 '봄이 오면'을 불렀고 공연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며 마지막 곡으로 '보편적인 노래'를 열창했다. 상당히 많은 곡을 소화했지만 덕원의 보컬은 큰 무리없이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빛이 나는 느낌이었다. 다른 멤버들이 분담하긴 했지만 1집에서 계피 보컬의 곡들도 덕원이 직접 소화한 파트가 많았으며, 가창력을 걱정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기우였다.



# 사람들이 앵콜을 외쳤지만 멤버들은 인사만 할 뿐 공연하러 나올 생각이 없었다. 응...?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을 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공연 전에 setlist를 확인한 결과 요즘 이들이 대표곡 중 '앵콜요청금지'를 거의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2집 앨범 타이틀곡을 배놓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데... 이미 공연 두 시간이 넘어서 사실 충분히 많은 곡을 하긴 했지만... 뭔가 이상한데 하면서 공연장을 나서다가,



# 밖에 있었던 작은 무대 위에 그들이 세팅을 마치고 있었다. 또 한번 낚였구나...;;;; 지금 떠올려 보면 몇몇 사람들은 보편적인 노래가 끝나고 바로 무대 밖으로 나갔으며, 지금 찾아보니 '이른 열대야' 공연 때도 그들은 무대 밖에서 앵콜을 준비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를 포함한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했으며, 내가 공연을 보다가 공개홀을 뒤돌아보니 뒤늦게 나오다가 뛰어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덕원과 류지의 보컬로, '마음의 문제', '속좁은 여학생'이 이어졌고, 그 다음으로 부른 곡은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올해 1~2월에 한참 슬럼프일 때 많이 들어서 기억에 남는 노래다.



# 마지막 곡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유자차'. 그리고 2시간 반, 24곡에 걸친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멤버들 모두가 최선을 다한 긴 시간 동안의 공연이었고 음악 속에서 충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1) 다섯시 반 - 잔인한 사월 - 변두리 소년,소녀 -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 ?? - 이젠 안녕 - ??
2) 꾸꾸꾸 - 울지마 - 춤 -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 두근두근 - 청춘열차 - 2009년의 우리들
3) 졸업 - 환절기 - ?? - 열두시 반 - 봄이 오면 - 보편적인 노래
4 - 야외 앵콜) 마음의 문제 - 속좁은 여학생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 유자차

앞으로도 이들의 활발한 활동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한국에 머문 짧은 시간의 값짐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