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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영화 소울 후기 (스포 만땅)

# 주말에 영화 보고 왔다. <소울>.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대작 영화들이 거의 없다가 이번 주에 사회적 거리두기도 약간 풀리고 오랜만에 대작 영화가 나와서인지 영화관에 매진도 꽤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영화 보면서 내내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반복했다. 오랜만에 영화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 다음은 영화 스포일러가 가득한 후기.

 

# 예고편으로만 보고 예측한다면, 그리고 영화 초반부까지도, 이 영화는 얼떨결에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 주인공 조 가드너가 태어나기 전 영혼들이 가득한 세계로 와서, 태어나기 전 영혼인 "22번"과 함께 다양한 "태어나기 전 세계"의 모습들을 경험하면서 뭔가 깨달음을 얻는 영화처럼 보이고, 조 가드너가 음악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 음악에 대한 영화처럼도 보이고, 그리고 영화 초반에 조 가드너가 목표를 향해 가는 삶의 열정이 강조되다 보니 그런 부분을 강조하는 영화 아닐까 싶기도 하다.

 

# 사실은 정반대다. 태어나기 전 세계에 대한 설명은 영화 내에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본격적인 영화는 조 가드너와 22번이 다시 지구로 돌아온 다음부터 시작된다. (예고편에는 해당 장면들도 많이 삽입되어 있지만 다시 지구로 돌아온 다음의 일인 것인지 알기 어렵게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음악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음악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가는 삶의 열정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을 기쁘게 살아가라는 이야기다.

 

# 영화 초반부에서 음악을 향한 열정이 돋보이고, 나름 힘들게 살아 왔고, 어머니께 구박도 받다가, 그러다가 본인이 그렇게 원하던 유명 밴드에서의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되는 주인공이 맨홀 구멍에 빠져서(...) 생과 사를 오가게 되는 모습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불행 같아서 안타까움을 주게 된다. (하얀 거탑...?) 물론 연출 자체가 계속 코믹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다음에 영화 내용이 뭔가 있으리라는 예상은 할 수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연히 주인공은 태어나기 전 영혼들이 가득한 세계로 오게 되는데, 여기서 주인공은 다시 돌아가겠다고 계속 수작을 부리다가(...) 문제의 22번과 만나는데, 22번은 지구로 가야 하는데 지구로 가기 싫어서 계속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영혼이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과 22번은 22번이 지구로 갈 때 주인공이 대신 지구로 가면 22번은 지구로 갈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서로 딜을 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태어나기 전 세계를 계속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이 때 끊임없이 나오는 22번의 독설은 영화의 주요 개그 포인트다. 

 

# 그렇게 (야매로) 지구로 돌아오는데, 몸이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22번이 조 가드너의 몸으로 들어오고 조 가드너는 옆에 있던 고양이 몸으로 들어간다. (영화 포스터에 있는 고양이다) 조 가드너는 가드너의 몸으로 들어온 22번과는 소통할 수 있으나 다른 인간들과는 말을 못하고, 이제 어떻게든 그 날 저녁 밴드 공연 전까지 조 가드너를 준비시켜서 몸을 다시 바꿔야 하게 된다. 이 부분이 예고편에는 없었던, 영화의 메인 스토리가 된다. 

 

# 그리고 여기서 설명되는 것은 삶에 대한 열정을 위한 뭔가 위대한 스파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 여러 순간순간에서 행복함을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22번은 조 가드너의 몸에서 반나절을 살면서 지구에서의 삶의 행복을 느끼고, 지구로 가기 싫다던 22번은 이제 지구에서 살고 싶어하게 된다. 반면 인간이 되고 싶어하던 조 가드너는 이제 22번과 티격태격하게 되고, 다시 바뀌면서 조 가드너는 무사히 공연을 마치지만, 본인이 원하던 목표를 이룬 것만으로 삶을 기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한 한편으로는 상처받은 22번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 세계로 올라가고, 괴로워하는 22번과 다시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쯤에서 22번의 삶에 대한 동경과 다시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하는 조 가드너의 감정에 이입하게 만드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자 힐링이다. 자, 그렇게 영화는 초반에서 강조하는 듯한 메시지와 아주 반대의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 자체가 그렇게 신선한 "재료"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후의 세계, 태어나기 전의 세계, 영혼이 뒤바뀜. 이런 것들 이미 많은 창작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천년 넘게 수많은 사람들을 다 만나봤다는 22번의 시니컬한 독설과 어처구니없이 흘러가는 스토리 묘사와 중간중간 디테일 때문에 웃기는 지점들도 아주 많다. 그리고 이런 풍성한 스토리와 묘사가 삶에 대해 관조하는 방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 준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그랬는데, 이 영화도 삶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가 있다. 뭔가 목표를 갖고 그것을 위해 불태울 듯이 달리면서 나머지 순간을 인내하는 것이 삶이라는 이야기도, 누군가에겐 그럴듯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소울>이 말하는 메시지와 완전히 반대 방향이다. 마치 <인사이드 아웃>에서 "이건 슬픔의 원이야. 모든 슬픔이 이 안에서 못 나오게 하면 돼"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그럴듯해 보여도 영화에서 말하려는 메시지와는 정반대였던 것처럼.

 

**

 

# 많은 사람들이 슈퍼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런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슈퍼스타가 되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꽤 많은 관문을 뚫고, 꽤 높은 단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다 뚫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것, 그리고 중간 단계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박사과정에서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비슷하다. 박사과정은 야구로 말하면 마이너리그에서 훈련받는 과정이다.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것은 유망주가 처음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면서 받는 계약금 정도가 될 것이고, 박사과정은 훈련받는 과정이 된다. 박사를 받고 나면 그때부터는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국 몇년간 꾸준히 주전으로 살아남는 사람은, 극소수다. MLB 역사상 최고급 유망주 소리를 듣다가 메이저리그 발도 밟아보지 못한 선수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 성공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많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분명히 그 성공은 모두가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을 향한 간절함 보다도, 흔들리거나 초조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그러니까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는 그런 토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 사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c10aw2rz_w&feature=youtu.be

 

"꿈꾼다는 건 좋은 거라
그렇게 얘기들 하죠
하지만 부디 잠깐만
날 내버려둬줘요"

 

이적이 부른 노래 Rest는 이 영화에 참 어울리는 노래이긴 하지만, 영화의 스포일러나 마찬가지인 노래이기도 하다.

 

 

+ <인사이드 아웃>을 <소울>을 본 다음날 집에서 봤는데, 재미있고 아이디어에 놀라워하면서 보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소울>이 더 인상깊고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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