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이야기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 마라

econphd 2015. 3. 8. 23:30

# 경제학을 배우기 전에 하나 염두해 할 사실은 경제학을 배우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와 '차익거래-Arbitrage'를 배우게 되면 꽁으로 돈을 벌 수는 없다는 것을 배우지만 돈을 버는 법은 배울 수 없다. 사기 혹은 합법적 꾐에 빠져 생돈을 날릴 확률을 줄여주긴 하는데 그런 목적이라면 투자한 시간대비해서 법학을 배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경제-경영으로 한 테두리에 묶여 있지만 돈을 버는 데는 경영학이 적어도 경제학보다는 더 가깝다. 생활경제를 보고 이해할 줄 알면 인생에 도움이 되긴 하는데 그것도 직접적으로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아니다.


# 경제학을 배워서 진정 유용한 것은 생활에 있다. 사람이 스스로를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연구하면 할수록 그저 상대방에게 부탁하거나 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탁하면 시키면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고 행동하는 것이 점차 익숙해지게 된다. 그리고 이걸 반대로 틀면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그럴듯한 핑계를 만드는 능력이 생긴다. 뭔가 귀찮을 때, 실수했을 때, 혹은 이기적으로 남에게 떠넘기고 싶을 때 본인의 상황에 대해서 이러이러한 이유라고 변명할 수 있다. 경제학적 용어를 써도 된다. 제일 초보적인 일화는 밥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할 때 밥을 더 먹으면 한계효용이 떨어져서 그만 먹겠습니다 하는것. 초보적인 만큼 단순하고 유시민이 학부시절 다른 사람이 이러는 거 보고 경제학을 배우면 인간성이 나빠지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 내가 아는 한가지 재미있는 예는 이거다.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 마라." 뭔가 이상하면서 말이 되는게 박명수 스타일의 명언 같다. 원본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남긴 잘 알려진 명언이다. 하지만 이 말은 "Do NOT do today what can be put off till tomorrow." 나소 시니어라는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가 한 말이다. 경제학에서는 time discount가 존재한다. 이자율이 있고, 내일의 이득보다 오늘의 이득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니며, 반대로 오늘의 손해보다는 내일의 손해가 낫다. 따라서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않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타당하다.


# 그런데 여기서 경제학적으로 타당하다는 말은, 합리적 선택이라는 뜻이고, 그냥 인간의 성향이 그렇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 않는게 더 좋다. 아니면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 않고 내일 하고 싶다. 는 말과 별 차이가 없다. 옳고 그름을 말하는 명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선호의 문제이면서 그런 선호가 이상하지 않다는 것에 더 가깝다. 즉 말을 그럴듯하게 했지만 이 말은 결국 게으르게 행동하고 싶으니까 게으르게 행동하겠다는 말을 더 잘 포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 경제학으로 좀 더 의문을 가져보면 이렇다. '인간의 일반적인 선호는 내일로 미루고 싶어하는데, 왜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말이 나왔을까?'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이 실제적으로 더 큰 효용을 주기 떄문일 것이다. 그러면 프랭클린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인간은 감정에 휩쓸리고 합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인가? 그렇게 감정과 이성의 대립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경제학은 이런 감정을 비효용이라는 이름으로 경제학의 틀 안에 포함한다. 즉 귀찮은 일을 오늘 할까 내일 할까 하는 고민은, 오늘 함으로서 얻어지는 마음의 편안함 및 기타 등등, 그리고 내일로 미뤄서 얻어지는 시간에 대한 선호를 합리적으로 비교하는 일로 생각할 수 있다. 


# 물론 실제로 사람들이 경제학적으로 이렇게 딱딱 재면서 결정하지는 않지만, 그건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충동구매를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행위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경제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경제학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툴로 다룰 수 있는 인간 행동의 폭은 생각보다 넓은 것이다. 


# 이런 식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는 bounded rationality. 즉 제한적인 합리성을 가정하고 모델을 셋업하기도 하고 실험경제학을 통해 인간의 합리성 수준을 체크하기도 한다. 은행이라는 돈에 대해 이자를 주는 기관이 없을 때 인간의 시간 선호는 어느 정도일까? 오늘 세 시간 일하는 것과 내일 세 시간 일하는 것 중 많은 사람들은 내일 일하는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오늘 세 시간 일하는 것과 equivalent한 내일 일하는 시간의 양은 얼마일까? 이건 실험으로 재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P.S. 이 말은 사실은 놀랍게도 모 경제학과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말이다. 그런데 구글에서 검색이 안 된다. 어딘가 구절이 한두 단어가 달라서인지 실제로 저 말을 한 사람이 나소 시니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저 말이 인용되는 곳마다 소스가 제각각 다르고 심지어 한글 홈페이지가 제일 먼저 뜨기도 한다. 나소 시니어라는 사람은 실존하는 19세기 법률가이자 경제학자가 맞긴 맞지만 저 문구를 나소 시니어라는 사람에게서 검색할 수가 없다. (검색하신 분들은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나소 시니어가 저 말을 할 때 무슨 뜻으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국내에서는 저런 뜻이 아니라, 그냥 내일 할 수 있는 일이면 서두르지 말고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P.S.2 아무튼 나는 이 말을 오늘도 실천하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 느리게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