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modern pop

이소라의 음악 세계 입문

econphd 2011. 5. 20. 12:35

# 내가 가수 이소라에 대해서 아는 건 아마도 남들과 거의 비슷한 정도였을 것이다. 어릴 때 가요톱텐을 항상 챙겨 봤는데, 93~96년부터인가 TV 출연 없이 가요톱텐 1위까지 오르는 가수들이 몇몇 등장하기 시작해서, 어린 마음에 꽤나 신기해 했었다. 그들 중 전람회, 조관우가 있었고, 이소라는 1위 후보에 오르고서야 프로그램에 처음 나와서 1위를 했다. '난 행복해' 때다. 그리고 팝/락으로 내 음악 취향이 기울면서 한동안 접할 일이 없었다.


(난 행복해) (가사는 아래에)



# 유일하게 내가 좋아하게 된 노래는 그의 최고의 킬링 트랙인 '바람이 분다'였다. 다른 이소라의 노래들은 그냥 바쁜 일상 속에 접할 기회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음악들에 비해 높은 집중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댄스음악은 물론이고, 락음악이나 팝은 애초에 가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또 직설적이라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들을 수 있고 한두번 들으면 좋다아니다 어느 정도 결론이 난다. 반면 이소라의 노래들은 가사가 제일 공들여 쓰여진 음악들이다. 아티스트로서 이소라는 작곡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의 모든 노래의 작사를 하고 주어진 곡에 기반하여 자신의 가사와 함께 자신의 노래로 소화해 내는 프로듀싱 능력이 뛰어난 뮤지션이다. 그런 만큼, 제대로 듣지 않으면 그 진가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바쁜 일상 속에서 들었던 이소라의 음악들은 내 무딘 귀를 한번에 휘어잡지 못했고, 그냥 무심하게 지나쳐 왔다.




(바람이 분다) (가사는 아래에)


# '바람이 분다'로 대표되는 이소라의 가사는 시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나는 모든 예술작품에 대해서 학문적인 접근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은 적절한 보충설명을 통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지난 이소라 7집의 타이틀곡이었던 'Track 8'이 대표적인데, 그냥 하나의 이별 노래로 접근하게 되는 이 노래는 Elliott smith의 죽음을 추모하는 노래라는 사실 아래서 좀 더 가사가 명확해지고, 그 가운데 흐르는 가사 전반은 다시 또 죽음만이 아닌 보편적인 이별을 포괄하는 것으로 넓어지며, Elliott smith의 음악을 들었던 이소라에서 이소라의 음악을 듣는 청자에게로 이어진다. (Elliott smith는 자살한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아직도 '의문사'라고... 아무튼)




(Track 8) (가사는 아래에)



# 또한 이소라의 가사는 자전적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에 '나는 가수다'에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부르면서 이 노래가 실제 자신의 이야기임을 은연중에 이야기하기도 했고, 사생활에 대한 (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를) 루머도 상당히 많다. 물론 평소에 이소라가 방송계에서 일을 하면서도 본인의 감정폭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수차례 드러내 왔기에 더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티스트의 실제 이미지와 노래가 맞물린다는 사실은 그의 음악을 더욱 진실하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 아무리 혼자 작업실에서 작업하면서 슬픈 감성을 일깨운다고 해도 이적이나 김윤아가 부르는 슬픈 감성은 이소라의 것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가사는 아래에)



# 이소라의 음악세계를 일종의 '브랜드'로 만드는 것은 그의 가사와 함께 '이소라 사단'의 넘치는 존재감이다. 이소라의 앨범에은 초반에는 김현철, 중-후반에는 조규찬이 중심에 있었고, 그 외에도 강현민(러브홀릭), 정지찬, 정재형, 이한철, 정순용(My aunt mary), 이승환(story) 등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주류음악계를 아우르는, 팝/모던 락을 넘나드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포진해 왔다. 특히 조규찬은 공동 프로듀서를 최근 꾸준이 담당하고 있다. (조규찬과 이소라가 함께한 WOW라는 곡이 유튜브 링크가 없는 것이 아쉽다. 두 사람의 보컬이 잘 어우러지고 이소라가 WOW유저임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더욱 돋보이는 곡이다.) 이번 '나는 가수다'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총괄 음악감독을 정지찬이 맡고 있다. 애초에 이소라가 아니었으면 프로그램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정지찬은 프로젝트 Hue, 그리고 지금은 듀오 One more chance를 통해 활동하고 있으며, 이승환(Story)은 유명한 가수 이승환과는 동명이인이지만 그 또한 음악계에서 꾸준하게 활동해 온 인물이다. 큰 화제가 되었던 'No.1'을 편곡하였고 '이제 그만', 'Amen' 등 이소라의 여려 명곡들을 만들어냈다.



(Amen) (4집에 수록된, 이번에 알게 된 이소라 최고의 명곡 중의 하나다. 모르시는 분들도 꼭 must listen!!)




# 이소라는 95년 1집으로 데뷔하여 난 행복해 / 처음 느낌 그대로 두 곡이 상당한 인기를 모았으며, 96년 2집 '영화에서처럼'은 '청혼, '기억해줘'로 기억된다. 98년 3집 '슬픔과 분노에 관한'은 락에 기반한 상당히 실험적인 사운드로 수작이었던 반면 상업적인 인기는 그다지 누리지 못한다. 2000년 4집 '꽃'은 요즘 화제가 된 '제발'을 타이틀곡으로 담고 있으며 명곡 'Amen'을 담고 있다. 2002년 5집 'Sora's diary'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가 담겨 있으며 2004년 6집 '눈썹달'에는 최고의 명곡인 '바람이 분다'가 담겨 있다. 전체적으로 3집이 이질적이지만 1집-4집은 전체적으로 팝발라드 사운드에 기반해있으며 5집부터 2008년 7집까지는 조금씩 팝에서 락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소라의 음악 전반은 락, 팝, 발라드, 재즈에 걸쳐 있다고 보면 크게 무리는 없다. 또한, 그러고 보면 거의 모든 앨범이 12월 (가끔은 10월)에 발매된 것 또한 돋보이는 점이다.




(청혼 - 이소라의 모든 곡 중에서 제일 밝은 노래가 아닐까.)


# 최근에는 몇몇 드라마 사운드트랙에 참가하였고 특히 이웃집 웬수 OST '말하자면 사랑 같은 것'은 주인공 유호정의 입장에 딱 맞춰지게 쓰여진 진정한 의미에서의 좋은 사운드트랙이다. (요즘 들어서 계속 사운드트랙은 드라마의 본질과는 멀어지고 있으니까) 리메이크 앨범 My one and Only love에서는 이소라의 입장에서 재해석된 팝 명곡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소라가 가사를 쓰지 않았더라도 이소라가 선곡한 곡들인 만큼 그의 관점을 볼 수 있는데, 유일하게 내가 아는 노래인 No matter what 은 정말 이소라의 노래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난하다. 하지만 타이틀곡인 Alone again 을 듣다 보면 (아니, 가사를 체크하다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Alone again) (가사는 아래에 있지만, 밑의 서교수 블로그 링크를 통해 해석을 확인하기 바란다)



# 위에 언급한 글처럼 이소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다가, 지난 주 나는 가수다를 보고 'No.1'에 정말 제대로 꽂혀서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외국 친구들에게도 Muse가 Britney spears 노래 부르면 어떻겠냐고 설명하고 싶었는데 그건 못했다ㅠ.ㅠ) 그리고 나서 인터넷을 뒤적이면서 노래를 하나하나 찾아듣고 방송도 확인하고 했다. 역시나 나와 음악적 관점이 일치하는 서교수 블로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소라라는 뮤지션 브랜드에 대한 믿음을 갇게 되었다. 또한 이소라의 인간적인 면에도 상당히 호감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감정들을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로 부르는 사람이라면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김동률의 '오래된 노래'가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 참고로 나는 가수다 김건모 탈락 때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나는 본 적이 없다)




(말하자면 사랑 같은 것) (가사는 아래에)



#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었을 그가 (자살을 결심한 적이 있었다고 터놓기도 했었다) 나는 가수다에서 자신은 두려워서, 쉽게 다시 사랑하지 못할 것 같다고 담담하게 터놓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더욱 아팠다. 삶이 힘들 때 가벼운 격려보다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그리운 것처럼, 내 마음을 깊게 이해해주는 이소라의 일련의 노래들은 요즘처럼 힘들 때 더욱 깊게 와닿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노래를 더이상 듣지 않아도 좋으니, 그가 인간으로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해답이 사랑이든, 아니든. 다행인지 요즘 7집 앨범의 track 12와 같은 곡들도 그렇고, remake 앨범의 일부 곡들도 예전보다는 삶과 사랑을 긍정하는 가사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 노래, '말하자면 사랑 같은 것'이 부디 이소라 본인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해피엔딩이기를.


# 본 글의 내용은 서교수 블로그에서 상당부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1) 이소라 7집 review : http://blog.naver.com/prof_seo/120090674498
2) 2009년 beyond the music (이소라 Track 8 해설 포함): http://blog.naver.com/prof_seo/120097894210
3) 이소라의 숨은 명곡 찾기 : 슬픔과 분노, 사랑과 삶에 관한: http://blog.naver.com/prof_seo/120113986090
4) 이소라의 싱글 트랙 말하자면 사랑 같은 것 review: http://blog.naver.com/prof_seo/120114528200
5) 이소라 remake 앨범 트랙 'alone again' 가사 해석 에세이 : http://blog.naver.com/prof_seo/120117514998
6) 이소라의 싱글 트랙 'No.1' review: http://blog.naver.com/prof_seo/120129614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