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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이야기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상 보기


# 우리 학교 1학년 미시과목 시험은 어떠한 주장-argument에 대해서 True/False/Uncertain 으로 답을 제시하고 충분한 부가설명을 하는 것이다. 내가 발견한 한가지 꼼수는, 일단 제시문에 어떠한 가정이 부가되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만약 ~라면 ~이다.'라는 문장은 True/False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A이면 B일 수도 있다'는 제시문은 True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어떠한 가정이 없이 사람들의 전반적인 행동 양상이나 정책의 결과를 단정하는 제시문은 단정적이면 거의 False이고, 단정적이지 않으면 Uncertain이다. 이 수업 내내 나는 경제학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과 직관을 많이 배운 반면, 경제학의 도구로 쉽게 세상을 재단할 수는 없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 그 이유는 경제학적 분석이라는 것이 결국 모델을 세워서 사회 현상을 분석 또는 예측하는 것인데, 모델은 현실 세계를 완전히 가져올 수 없으므로 필연적으로 가정을 하게 된다. 강한 가정을 세우면 모델을 사용하긴 좋지만 현실을 완전하게 반영하지 못하며 가정이 너무 적으면 모델이 너무 복잡해서 정책에 따른 결과를 분석할 수 없어질 수 있다. 간단한 경제학적 모델로 새상을 재단하려 하다가 중요한 가정을 무시한다면 그 결과는 상반될 수 있다. 강의에서 다양한 내용을 배웠지만, 결국 시험문제의 핵심은 어떤 제시문에 대하여 그 제시문이 충분한 가정을 담았다면 True, 그렇지 않다면 False or uncertain이 되고 충분한 가정을 제시하여 부가설명하면 되는 것이었다.

# 이번 무상급식 이슈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찬성/반대가 아닌 투표 참여/거부의 문제는 일반 투표와는 다르게 정족수 개념이 걸려 있는 주민투표에 대한 정치학적인 이해에서 출발할 것이고, 재정 건전성의 문제를 말하기에는... 역시 쉽지 않다. 우선 무상급식 하나만 살펴본다면, 무상급식으로 얻어지는 편익과 비용을 비교하여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인 무상급식과 전면 무상급식에 대하여 직접적인 비용을 계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 간접적인 비용과 편익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식사의 질이 나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고, 또한 무상급식의 제일 주요한 편익이 초등학생들이 집안 환경과 부모님의 수입에 따라 다른 음식을 먹는 데서 50% 빈곤층의 어린이들이 느낄 수 있는 수치심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계량화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엔 없을 것 같다. 또한 부유층 자녀들은 전면 무상급식을 하든 말든 도시락을 싸오거나 부식을 더 싸올 거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걱정일까?

# 오히려 문제는 재정 건전성에 있다고 본다. 학교에서 다루는 정책 분석이 정책의 편익과 비용을 비교하여 판단하는 것이었지만, 실제 재정이 집행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한정된 재원을 통하여 어느 쪽에 돈을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판단일 것이다. 즉 정책들 중에서 어느 쪽에 우선 순위가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 지금 정부가 하는 모습을 보면 불필요한 정책이 너무 많다. 4대강 사업 하나로도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단독으로 무상급식 이슈에 대해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정부가 불요불급한 예산 사용을 줄여서 무상급식을 한다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이 주장도 그 자체로는 뭔가 경제학적 기반에서 완벽하다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4대강 사업에 대한 효과와 비용은 수많은 문헌에서 추산되었지만 결국 4대강 찬성하는 측도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있다. (그것이 부풀려진 것이든 아니든) 이런 결과는 결국 무형적인 편익/비용의 경제적 환산이 무의미함을 알려주는 일이다. 또한 그렇다면 4대강 사업도 하지 말고 무상급식도 그냥 부분적인 무상급식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더 확보하자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더 할 말이 마땅치 않다.

# 한정된 재원을 통해 어떤 방법이 빈곤 퇴치에 효율적인가는 Duflo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경제학적으로 확실한 답을 얻는 것에 상당히 근접하였지만, 선진 사회의 경우 세부적인 정책에 대하여 실험을 하는 것도 어렵고 인류 불평등의 문제를 깔끔하게 분석하는 것도 여전히 요원한 것 같다. 경제학이 할 수 있는 제일 바람직한 역할은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여 어떠한 정책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효과와 잠재적인 부작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준구 교수님의 글을 이번 기회에 몇몇 읽어보게 되었는데, 감히 이런 말을 하기 죄송스럽지만 의문스러운 점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경제학자의 눈으로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고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주 돋보였다. 경제학자가 세상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제일 적절한 조언이라고 생각되었다. 지나치게 경제학으로 완벽한 분석을 추구한다면 결국 나오는 답은 Uncertain 뿐이 아닐까.

http://jkl123.com/sub3_1.htm?table=my1&st=view&page=1&id=117&limit=&keykind=&keyword=&bo_class=
# 이준구 교수님 홈페이지에서 현재의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 제일 잘 정리된 글인 것 같다. 경제학자들은 돈을 벌고 싶은 개인들이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에 대하여 필요할 때는 규제를 하지만, 규제를 하더라도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거나 발각되지 않는 범위에서 규제를 어기면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사회 문제를 본다. 개인들로 하여금 규제를 지키도록 교육하는 것은 때로는 유효하기도 하지만 그 한계도 명확하다. 이 글에서 교수님은 복지에 대한 열망을 과도한 복지가 초래할 수 있는 문제를 이야기하기보다는 그러한 열망이 퍼진 근원을 찾아서 그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관점이 경제학자의 문제 해결 관점과 상통한다고 본다. 또한 신뢰에 대해 강조한 면도 요즘 실물경제를 바라보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